[문화계 거목 인터뷰] 피아니스트 서혜경 "긍정의 힘으로 '유방암 말기' 죽음의 사선 넘었죠"
힘겨운 삶을 다스리고 일궈 나가는 ‘아름다운 승리자’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삶의 롤 모델로 그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유방암 말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피아노를 포기하라’고 모든 의사들이 손을 내저으며 말리는 극한 상황을 스스로 깨버리고 다시 무대에 우뚝 선 용감하고 아름다운 여인. 그가 지난 14일 월트디즈니 콘서트 홀에서 LA심포니와의 연주회를 통해 그 긍정의 파워를 우리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줬다. 한때 화려한 의상과 정열적 연주로 화제를 몰고 다녔던 피아니스트 서혜경, 그가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던 예술의 힘으로 삶의 위기를 딛고 일어선 아름다운 용기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LA 심포니와 가진 연주회는 성공적이었어요. 청중들 앞에서 어떤 감흥이 있었습니까? ▶그동안 LA에서 여러번 공연해지만 이번에는 정말 내가 한인들 앞에서 연주하고 있구나 내가 살아나서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한인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피부에 와 닿아 가슴을 울리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어려움을 겪은 후 제 자신도 바뀌어서라도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청중들이 열광적 박수를 보내 주시면 내가 잘했구나 하는 자신감과 뿌듯함이었지만 요즘은 제 연주를 들어주시는 청중들에 대한 감사가 앞서거든요. 특히 멀리 미국에서 한인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니 감회가 더욱 깊었어요. - 모두들 서혜경씨의 그 놀라운 힘이 어디에서 나는지 궁금해 합니다. ▶원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어려움은 피하려하지 않고 직대면해서 헤쳐나가는 성격이지요. 5살때 피아노를 시작해 프로페셔널로 무대에 서기 까지 죽자사자 피아노만 생각한 억지스러움도 있고요. - 바로 그 성격이 유방암을 극복한 주요 포인트군요. ▶ 제가 유방암 선고를 받은 것은 2006년 10월 이었어요. 그리고 2007년 4월에 수술을 했으니 벌써 3년전의 일이군요. 의사로부터 유방암 3기라는 진단을 받고도 사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어요. 계획돼 있던 연주회나 다 끝내고 치료 하겠다고 했더니 의사들이 웃더군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모두 7명의 의사에게 진단을 받았는데 5명의 의사가 앞으로 피아노는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고 암담해서 울기도 하고 하나님에게 소리치며 항의도 했지요. 그러나 결국 피아니스트는 포기 못하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 오기가 저의 긍정적 힘과 합해져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 걸까요? - 다행히 좋은 의사를 만나셨다지요? ▶노동영 박사님이시지요. 오늘날 제가 이렇게 피아니스트로 재기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은인같으신 분이세요. 특히 제 음악을 좋아하셔서 수술 하실 때도 저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시면서 집도하셨던 분이세요. 모두들 안된다고 했는데 이분은 저를 보자마자 '피아노 칠 수 있지요'하면서 웃으시더라고요. 신경과 근육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초정밀 수술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 해 냈잖아요. - 긍정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줍니다. ▶맞습니다. 노 박사님도 저를 처음 대하고 사실 고민이 많이 되셨을 거예요. 하지만 일단 환자에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아셨던 것이지요.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치료도 만만치 않으셨지요. ▶노 박사님의 말처럼 수술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저는 우선 키모(항암치료)를 먼저 받아 암세포를 최소화 시키는 쪽을 택했어요. 들어서들 아시겠지만 항암 치료는 세번만 받으면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요. 저는 모두 8번의 항암 치료를 받고 오른쪽 유방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어요. 워낙 증상이 심해 겨드랑이 까지 깊이 드러냈습니다. 방사선 치료는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인 33번을 받았어요. -수술하신 후에도 특유의 긍정과 용기의 힘을 발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대부분 암환자들이 수술하고 일주일은 병원에 머문다는데 저는 사흘 만에 퇴원했어요. 누워서 기다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수술이 제대로 됐는지 피아노를 한번 쳐보고 싶어요. 했더니 선생님도 웃으면서 퇴원하게 해 주시더군요. '반드시 피아노를 쳐야 한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우면서 나를 일으키기 위해서 이를 악물면서 힘을 냈습니다. - 원래 건강 체질이셨지요? ▶남들에 비해 건강은 자신있다 생각했습니다. 암이 발병하기 전에는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게 기르고 다녔어요. 삼손처럼 제 힘은 머리칼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항암 치료를 받아도 저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혜경도 별 수 없더라구요. 모든 머리칼이 빠지는데 쇼크였어요. -그래도 요즘 연주하시는 것 보고 있으면 언제 암을 앓으신 분인가 의심이 됩니다. ▶겉으로 멀쩡한 것 같지만 아직도 내면에서는 엄청난 싸움을 합니다. 수술 후 33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니 우울증이 아주 심하게 왔어요. 수시로 죽을 것 같은 암담함에 사로잡히는데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연주회 날자를 잡았습니다. 3개월 후에 서울 에술의 전당에 예약을 해 놓고 무조건 연습으로 들어갔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고 피아노 만 쳤습니다. 한번 쳐지기 시작하면 일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늘어지려고 하면 스스로 매를 들어 저를 부추겨 세우지요. 암의 재발도 늘 불안 요소이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은 생각 안하려 노력합니다. -복귀 연주회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동시에 연주하신 것도 뉴스였지요? ▶사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은 한곡만 하기에도 힘겨운 곡이거든요. 그런데 이후 좀 더 욕심이 나더군요. 그래서 얼마전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그 심포니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5곡을 한무대에서 연주한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곧 나올 예정이니 많이들 사랑해 주셨으면 해요. - 앙드레 김이 돌아가시기전 인터뷰 하셨지요? 유작이 된 셈이군요.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너무 갑가지 돌아가셔서 놀랐습니다. 지난 5월 중앙일보에서 새로 제작하는 사람 섹션 '제이'(j)에 '기자 앙드레 김의 특별한 만남'이라는 특집에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셨지요.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부모님(아버지는 성원제강의 서원석 회장)과도 아시는 사이였고 오래전 제 드레스도 디자인 해 주셨는데요. 그 분야에서는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니크 하시고 훌륭한 분이셨는데. 저의 재기도 기뻐하시면서 좋은 자서전 쓰라는 격려도 해주셨지요. 안타깝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 많이 들려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1982년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고 1986년 줄리아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서혜경은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고전과 낭만을 아우르는 피아노 명작의 빼어난 해석가로 이름나 있는 국제적 명성의 피아니스트. 1980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런던 필, 로열 필하모닉, 동격 국립 교향악단, 상하이 필하모닉 등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카네기 홀에서 라자르 벨만, 벤 클라이번 등과 함께 스타인웨이 피아노 135주년 기념연주회를 가진 바 있다. 대한민국 문화훈장, 윌리암 퍼첵상, 카네기 홀 올해의 3개 피아니스트 선정을 비롯 화려한 수상 경력이 있다. 경희대학 음악대학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서혜경씨는 2006년 유방암 진단후 수술, 성공적으로 재기했으며 현재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이나 문화 전문기자